[INTERVIEW][#009] 뺀질한 동네 잡지가 말하는 홍대다움 : 홍대앞 로컬 매거진 스트리트 H

 인터뷰 

뺀질한 동네 잡지가 말하는 홍대다움 

홍대앞 로컬 매거진 <스트리트 H> 공동 발행인 장성환 「2」

<1부에서 이어집니다>

장성환 디자이너의 본캐는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의 대표. 부캐는 <스트리트 H>라는 로컬 매거진의 발행인이다. 홍대앞을 둘러싼 문화와 홍대앞의 다양한 지리정보를 기록중인 <스트리트 H>. 그들은 최근 홍대앞 사람들을 만나 '홍대다움'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frice도 그것이 궁금하다. <스트리트 H>가 생각하는 '홍대다움'을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 쇼룸에 전시된 <스트리트 H>. 홍대앞 문화를 다룬 아티클은 종이잡지와 웹사이트를 통해 배포된다. ⓒfrice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는 홍대앞 로컬 매거진 <스트리트 H>를 15년 넘게 발행하셨죠.
잡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스트리트 H>는 홍익대학교 앞에서 시작한 다양한 문화와 변화. 홍대앞을 홍대앞스럽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담아내는 동네문화 잡지입니다. 맞춤법 규칙 상 '홍대 앞'으로 띄어쓰기해야 되는 걸 알지만, 홍익대학교 앞 문화권이 일종의 고유명사이길 원해요. <스트리트 H>는 그래서 일부러 '홍대앞'* 이라고 붙여쓰기를 합니다.


*이하 언급되는 홍대앞은 전부 붙여쓰기 함. 




<스트리트 H> 소개자료. '동네잡지는 다소 거칠고 아마추어적이다' 라는 편견을 깨는 뺀질한 잡지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스트리트 H








TALK1. '홍대다움'이란 무엇인가?

창간 15주년 기념호 주제가 '홍대다움'입니다. 이 주제에 응답한 홍대앞 사람들 생각이 흥미로웠어요. 
발행인이 정의하는 ‘홍대다움’이 궁금하네요.
<👉 스트리트 H 창간 15주년 기념호 보러가기 >

제가 생각하는 홍대다움은 ‘똘끼_비정형'입니다. 다른 과 출신들이 들으면 섭섭해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홍대의 DNA의 시작은 건축학과와 미술대학이라고 생각해요.

학력고사 성적은 낮아도 그림만큼은 아주 열심히 그린 친구, 미술학원조차 없는 동네에서 독학으로 미대 입시를 준비했던 친구,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이 뒤섞이면서 홍대앞에 재밌는 일이 많이 벌어졌거든요. 그야말로 ‘재미난 작당’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홍익대학교 정문 (1996) ⓒ스트리트 H

홍익대학교 정문 (2024) ⓒfrice




특히 미술과 건축을 전공하면 작업실이 필요합니다. 컴퓨터 이전, 수작업 시절에는 과제 결과물이 꽤 크기 때문에 더 필요했죠. 대형 상권 형성으로 홍대앞 작업실이 다른 곳으로 많이 밀려나게 됐지만 그전에는 재학생 4명 중 1명은 홍대앞에 작업실을 했을 겁니다. 제가 볼 땐 어림잡아 홍대앞에 500여 개의 학생들 작업실이 있었을 것으로 봐요. 밤마다 500여 개의 반딧불이가 깜박이는 동네가 바로 홍대앞이었어요.

여기에 예술, 문화, 출판 종사자들도 홍대앞으로 모였습니다. 한국의 출판사 밀집 지역은 원래 종로 관훈동이었어요. 그러다 당시 출판사들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서 온 동네가 서울의 변두리인 홍대앞이었죠.




홍대앞 공동작업실 내부 ⓒ서울역사박물관

홍대앞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커뮤니티 테이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원격근무하는 예술/문화 종사자를 흔히 만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그때의 ‘홍대앞’은 어떤 분위기였나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이 84년에 생겼어요. 그전까지는 그 아래로 내려갈 일이 없었어요. 그야말로 홍대앞은 홍대 교문 앞 정도의 좁은 의미였습니다. 지금의 호미화방이 있는 서교 오피스텔 앞길이 당인리 발전소(현 한국중부발전 서울발전본부)로 무연탄을 나르던 철도였어요.

발전 연료가 석유로 바뀌며 철도가 폐기되자 무허가 건물들이 무단 점거하게 되었고 일정 기간 지나면서 점유권이 생기게 된 거죠. 지금은 핸드폰 가게나 액세서리 가게들이 있지만 오래전에는 기록에 남을 만한 멋진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작업실과 다양한 활동을 했었어요. 






호미화방과 앞골목. 20세기에는 기차가 운행했던 철길이었다. ⓒfrice(위), 스트리트 H(아래)




한참 선배들 말씀에 따르면, 홍대앞은 눈비가 내리면 길이 진흙 바닥으로 바뀌던 변두리 동네였다고 해요. 오늘날 같은 동네의 인프라도 없었고요. 화장실도 없고 상수도만 있는 차고, 반지하에서 살면서도 마냥 좋았던 사람들이 아지트 같은 걸 만들고,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모여서 이상한 작당을 하니까. 모든 게 재밌었던 거죠. 




홍대앞 철길자리 무허가건물. 시장으로 기능했던 서교동 골목길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트리트 H

서교365전경. 365번지 건물을 둘러싼 인근 건물에 상업공간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오늘날 홍대앞 골목길에 길게 이어진 건물과 공원시설은 당인리 발전소로 이어지던 철길의 흔적이다. ⓒ서울역사박물관(좌), 서울특별시 아카이브(우)




일부는 졸업하고 나서도 홍대앞을 떠나지 않고 근처에서 미술학원을 하거나 술집, 카페를 차렸어요. 디자이너, 예술가, 문인, 출판사, 이런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뒤섞였고 거기에 인디 음악이 또 들어오게 돼요. 제가 생각하는 '홍대앞 DNA'는 그런 비정형의 열정들이 모이면서 만들어졌습니다.





홍대앞 일대 야경. 서울 변두리 동네가 도시 서북부 최대 규모 거점지역으로 성장했다. ⓒ서울역사박물관

홍대앞 라이브 음악 공연장. 정해진 테마 없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포스터와 스티커들이 마음대로 모여 홍대앞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frice




그랬던 홍대앞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맞이하며 많은 게 변했습니다. 

상권이 형성되고 자본이 밀려들어 오면서 작업실이나 소규모 원주민 가게들이 밀려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홍대앞'이 팽창하면서 <스트리트 H>도 문화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홍대앞'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따지면 홍대앞의 의미를 잘 볼 수가 없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합정, 망원, 연남도 홍대앞으로 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창간호부터 홍대앞 지도도 매달 발품 팔아 조사하고 꾸준히 수정해서 내고 있는데요. 그 지도에는 아직도 편의점, 스타벅스 이런 건 넣지 않고 있어요. 프랜차이즈는 홍대앞 문화가 아니라는 고집이죠. 




 2024년 홍대앞 지도. 오늘날 홍대앞의 개념적 범주는 연남동과 서교동까지 넓게 확장된다. ⓒ스트리트 H




홍대앞 지도지만, 길 찾기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는 지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단순한 위치 정보는 스마트폰으로 찾아도 되는 정보지, 우리의 역할이 아니라는 거죠. 새로 생겼다고 무조건 넣는 게 아니라 홍대앞다움이 있어야 지도에 포함시킵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위치” 정보는 자연스레 “존재” 정보로 승화됩니다.

더 이상 길 찾기가 아니라 존재의 역사가 기록되는 것이죠. 조선시대 한양 고(古)지도의 용도가 위치정보를 넘어 당시 사회상을 짐작하게 해주는 소중한 정보이듯이 말입니다. 예전에는 홍대앞에 이런 의미있는 공간이 있었구나! 하는 기록이죠.




 2009년 홍대앞 지도. 오늘날 자취를 감춘 홍대앞 공간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2024년 지도와 비교하면 연남동, 동교동, 상수동, 합정동 방면 공간정보가 적다는 점이 눈에 띈다. ⓒ스트리트 H

1988년 홍익대학교 입구 지도. 홍익대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T'자 형으로 뻗어나가는 문화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트리트 H




홍대앞에는 다양한 동기의 창업이 많아요. 생계형, 낭만형, 문화공간으로서의 자기 선언 등. 옛날에는 새로운 곳이 생기면 다 가 봤는데 지금은 홍대앞이 너무 넓어져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뭔가 다른 곳은 딱 알겠어요. 그런 곳에 가서 손님으로서 쥔장에게 슬쩍 물어봅니다. 뭐 하시던 분이세요? 그러면 “얼마 전까지 방송국 PD 했었는데 20대 때는 홍대앞에서 좀 놀았어요. 그때 참 재밌었던 기억입니다. 그러다 이제는 벌 만큼 벌었으니 이 동네에서 뭔가 재밌는 거 해보고 싶어 왔어요."라는 답이 나와요.

전직이 수상한 사장님이 많은 곳, 이게 홍대앞이었죠.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지금도 홍대앞뿐이라 봅니다.





<스트리트H>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픽토그램. 포스터 홍대앞에서 꼭 해봐야 할 60가지  ⓒfrice






'홍대앞'의 범위가 크게 넓어졌습니다. '홍대앞'은 어디까지일까요? 최근 주목하고 계신 곳은 어디인가요? 

지금은 합정, 망원까지도 이어졌고, 망원 쪽에서 더 가면 상암동 DMC가 있는데, 상암은 그쪽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놀 만한 곳은 없어요. 그러니 망원, 합정을 거쳐 홍대앞까지 나오게 되는 거죠. 홍대앞이 아직 유지되는 것은 이렇게 밀려 나갈 지역이 있는 지리적 특수성이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수동, 용강동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광흥창 쪽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상수역에서 한 정거장이기도 하고 걸어가다 보면 신촌 방면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고요.








TALK2. 아카이브 

성환님이 애정하는 '홍대앞 스팟'이 궁금합니다. 홍대앞을 가장 오래 관찰하신 분은 어떤 장소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서교플라자 호미화방 있는 365번지 골목의 'bar 다'입니다. 'bar 다'는 초대 사장이 운영하던 시절에 아르바이트하던 점원이었던 분이 가게를 물려받았다고 해요. 현존하는 ‘홍대앞’ 바 중 가장 오래됐을 겁니다.

지난달에 생긴 가게가 다음 달에 문을 닫는 홍대앞 상권에서 아직도 영업하는 게 대단하죠. 이곳을 만든 초대 사장은 얼마 전 광흥창에서 '오후 네 시'라는 바를 만들었고 그분의 아드님은 상수역에서 '상수리 bar'를 아버지에게 비용 지불하고 인수하여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트리트 H는 이런 서사와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젊고 잘생기고 돈 있는 사람이 와서 "저희가 홍대앞 F&B 씬을 바꿔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곳은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자본은 언제든 이익을 위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태원 경리단길 같은 경우가 아주 대표적인 사례죠.



 


주차장길 쪽에서 바라본 'bar 다' ⓒ서울역사박물관

2024년 8월, 같은 곳에서 바라본 'bar 다' ⓒ스트리트H

 'bar 다' 내부(좌),  2013년 3월 'Bar다' 벽에 남긴 낙서(우) ⓒ서울역사박물관, 스트리트 H 

광흥창 '오후 네 시' 오너 김명렬님. 그는 여전히 홍대앞 어딘가에서 바를 지키고 있다 ⓒfrice




사라진 '홍대앞 스팟'중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곳을 전해주세요. 

1988년 지금의 상상마당 대각선 건너편 약국 자리에 한국 최초의 전자 카페가 있었습니다. “일렉트로닉 카페”. 30대의 안상수 디자이너와 그의 친구 금누리 교수가 함께 만든 공간입니다. 아주 재미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료, 사진도 남아있지 않아서 많이 당혹스러웠습니다. 미국과의 팩스 교류 아트전, 희귀했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항상 틀어져 있던 TV. 전화 모뎀이 연결된 AT 컴퓨터 등. 기억이 생생한데도 기록 사진이 없었습니다. 홍대앞의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활동, 공간의 기록이 없는 것에 놀랐어요. 그것이 <스트리트H>를 만드는데 일정 부분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전자카페 일렉트로닉 카페. 1988년 지금의 상상마당 대각선 맞은편에 수상한 곳이 생겼다. 쇼윈도우에는 기울어진 철제 캐비넷이 놓여 있던 이곳은 안상수, 금누리 두 사람이 의기 투합해 만든 공간이었다. LA와의 FAX통신을 이용한 전시회가 시도됐던 곳. 일렉트로닉스가 있던 자리는 시간이 흘러 2014년에는 부동산이 들어섰고 2024년 8월에는 약국이 됐다. ⓒ스트리트 H









별책부록
스트리트 H 발행인이 추천하는 '홍대앞 스팟' 5  


✔비하인드 (2001~) 

홍대앞 카페 문화를 이끈 장수 카페. 다양한 직업의 4인 공동 사장이 삼거리 포차 뒷 골목에서 시작. 현재는 주차장길로 이전. 손님들 요청으로 카페의 선곡 리스트를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도 발매했었던 곳.

ⓒfrice



✔ 곱창전골 (2002~)
음악주점. 호미화방 근처 골목에서 시작한 홍대앞 대표 LP바. 먼저 입주한 지하의 호프집 사장님이 업종충돌을 염려하자 곱창전골집을 하겠다며 시작했다고. 내한공연을 오는 해외 뮤지션들이 밤에는 여기에 모인다.

ⓒfrice



✔ 클럽 빵 (2004~)
1994년 이대 후문에서 시작해 홍대앞으로 옮겨온 라이브 클럽. ‘모던록의 산실’이라고 불리며 포크록,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편애 아닌 편애가 있는 곳. 그런가 하면 신인밴드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홍대앞 대표적 무대.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본 모습. 홍대앞 창작자들이 상권 내 지하건물을 이용해 소극장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frice(위), 서울역사박물관(아래)



✔ 이리카페 (2004~)
허클베리핀 드러머 출신 쥔장이 서교동 무과수마트 지하에서 시작해서 2009년 10월 상수동으로 이전. 상수동의 동네사랑방. 다양한 인물들이 이 공간에서 공연과 발표, 인터뷰를 한 것도 매력.

ⓒfrice

 


✔ 앤트러사이트 (2010~)
신발 만들던 공장을 로스터리 카페로 만든 곳. 크레인, 바닥, 벽돌벽 등 예전 건물의 요소들을 최대한 유지한 인테리어가 새롭다.

ⓒfrice







😈 장수 로컬 매거진 <스트리트 H>. 홍대앞을 오랜 기간 관찰하며 단순한 지리 정보나 뻔한 공간 정보가 아닌, 역사, 문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홍대앞다움'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성지, 무언가에 푹 빠진 사람들이 연 독특한 가게가 끊임없이 홍대앞을 둘러싸는 이유를 엿볼 수 있었는데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앞을 규정하는 기준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내 것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의지 혹은 자본에 포섭되지 않으려는 자유분방함' 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앞으로의 홍대앞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요? 지금의 우리가 기억하는 홍대앞 그 모습으로 계속 남아있을까요?



정리 프라이스
사진 프라이스, 스트리트H, 서울역사박물관
장소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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