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라떼 그 잡채!' 박물관장님이 내려준 20세기 K-다방 이야기 「1」

 시리즈 

커피의 매혹, '가배'에서 '아아'까지

- (1) 다방문화와 믹스커피

박물관장님에게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옛날에 어떤 모습으로 커피를 소비했나요?" 정선 아리랑박물관에서 민속자료수집에 일평생을 바친 진용선 박물관장의 시리즈 컬럼을 소개한다. 한국의 커피 및 카페 문화는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K-다방 이야기 1화는 박물관장님이 내려준라 라떼토크.




1993년에 촬영된 다방의 간판 ⓒ국립민속박물관




20세기 K-다방 회고록

다방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문인들에게는 ‘창작을 위한 산실’이었으며, 다방의 전성기도 시작된 1960년대부터는 문인이나 예술가 등 지식인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오갈 데 없는 실업자들이 일자리에 대한 한 가닥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다방은 사무실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던 또 다른 사무실이자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 아지트였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은 ‘사장’이니 ‘전무’니 하는 직함을 박은 그럴싸한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 마치 사무실인 양 다방에 죽쳤다. 다방에서 마담이 “김 사장님 전화요.” 하면 대여섯 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릴 정도로 사장 허세가 심한 곳이었다.




1993년에 촬영된 다방의 간판 ⓒ국립민속박물관




강원도 정선의 함백 거리를 걸었다. 조동시장 삼거리에서 감리교회로 가는 길, 우체국 옆에서 개울가 쪽으로 난 큰 골목길. 갈라지는 골목골목마다 약산다방, 삼화다방, 함백다방, 맥심다방, 신화다방이 있던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만남을 즐기며 이야기가 오가던 곳. 한때는 저곳에서 많은 이들이 세상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느라 북적이던 곳이다. 밤이면 보석처럼 다방 간판들이 빛나던 곳이다.






한국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할 때 사용하던 커피병과 커피잔. 함백다방명함과 파란 보자기가 눈에 띈다. ⓒ진용선




기억의 저편에는 아직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직원이 정성스레 내어 주는 계란 동동 모닝커피와 쌍화차, 파란 보자기에 보온병을 싸들고 분주히 커피를 배달하는 여직원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그런 시대였다. 함백광업소 폐광 이후 다방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가운데 2010년대 중반까지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던 함백다방도 어느덧 옛날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늙어 세상을 달리하고, 주변의 익숙한 풍경도 사라져간다. 한때 화려했던 다방은 온데간데없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다. 허물고 서둘러 새것을 세우다 보니 한때 누군가와 커피를 마시던 소중한 다방도 추억에 머물 뿐이다. 다방에서 “둘 둘” 하면 직원이 설탕 두 스푼 크림 두 스푼을 넣어 휘저은 뒤 스푼으로 떠서 맛을 보고 다시 저어 건네주던 이상한 풍경에 웃음 짓는다.




1976년 5월 29일자 7면에 실린 일명 '꽁초커피'. 
커피를 정량보다 적게 넣고 대신 1/3 개비 분량의 담배가루를 섞어 색을 진하게 하거나 소금과 계란 껍데기를 넣어 커피맛을 내게 했다.  ⓒ경향신문




다방의 성행과 부침 속에 한국 커피의 역사도 쌓여 갔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정부가 모든 다방에서 커피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그럼에도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혼돈의 시기를 겪으면서 커피가 귀한 상품이 되다 보니 전국 곳곳에 소위 ‘미제 장사’, ‘미제 아줌마’들이 생겨났고, ‘맥스웰하우스’ 커피는 커피의 대명사가 되어 이들의 필수 품목이 되었다.

원두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때는 담뱃가루와 톱밥, 콩가루, 달걀 껍데기를 섞어 색깔을 진하게 낸 가짜 커피인 ‘꽁초 커피’를 파는 꼼수를 부리다 적발되기도 했다. 일부 다방은 퇴폐 카페를 흉내 내다 당국의 철퇴를 맞았고, 엽차 잔에 몰래 위스키를 팔기도 했다.







당시 커피믹스는 현재 우리가 아는 기다란 스틱모양이 아니라 직사각 형태였다. ⓒ진용선




믹스커피의 탄생과 다방의 몰락


1974년 동서식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크림인 ‘프리마(Prima)’를 개발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판매를 시작한 ‘커피믹스’는 우리나라 커피 문화에 혁명과도 같았다. 휴대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방습포장된 일회용 인스턴트 커피는 언제 어디서든지 끓인 물만 있으면 손쉽게 마실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품이었다.




청양장 커피 행상 ⓒ국립민속박물관




무엇을 먹더라도 섞고 비벼 먹는 ‘비빔밥 문화’와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커피, 설탕, 크림의 황금 비율을 읽어 소비자들의 기호를 극대화한 우리나라 고유의 커피였다. 그 바탕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방에서 즐기는 커피와 설탕, 크림의 이상적인 비율에 대한 ‘빅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증평장 커피가판대 ⓒ국립민속박물관




커피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마실 수 있고 커피의 맛과 향이 좋아지자 다방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다방도 자구책 마련에 몰두했다. 대학가나 젊은 층이 많이 찾는 다방들은 DJ를 둔 음악 다방으로 변했고, 중소 도시 다방을 중심으로 ‘레지’들이 직접 커피를 배달하는 서비스로 어려움을 타개하려 했다. 진한 화장과 야한 복장의 레지, ‘티켓 다방’이 사회 문제로 크게 부상해 다방이 퇴폐업소의 이미지로 인식된 것도 1980년대 무렵이다.

여기에 더해 1980년대 중반 원두를 갈아서 물을 끓여 손수 내리는 커피의 인기와 함께 커피 전문점 붐이 일어나면서 다방은 나이 든 사람들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커피’ 하면 ‘다방’, ‘다방’ 하면 ‘커피’로 명맥을 이어온 다방도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내리막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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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1명은 1년에 커피 512잔을 마신다


한국에서 이제 커피는 쌀보다 더 많은 소비가 되는 식품이 되었다. 다방의 뒤를 이은 커피 전문점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으며, 커피도 캔, 병, 컵, 페트병 등 다양한 형태에 담겨 제품으로 나오고 있다.

2018년 국제커피협회(ICO)의 ‘세계 커피 소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커피를 많이 수입한다. 2022년에는 한 포대에 60킬로그램짜리 230만 포대를 수입했다. 2022년 국내 커피 시장 규모가 10조 원을 넘었고, 국민 1인당 연간 평균 512잔을 마시는 ‘커피 공화국’이다.

구한말 미국을 다녀오며 “서양 사람들은 차와 커피를 우리네 숭늉 마시듯 한다.”라고 한 유길준(兪吉濬)도 한반도에서도 커피를 숭늉 마시듯하는 ‘커피 공화국’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국에서 커피는 140년에 이르는 문화적 산물로 자리매김했다.


(2부에서 계속)





진용선
정리 김정년

진용선은 정선 아리랑박물관장이다.
‘한국 다방의 사회문화사’, ‘한국 커피의 역사’ 등을 주제로 커피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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