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006] 재봉틀로 할 수 있는 디자인? 뭐든 OK : 이태원 국일사

 인터뷰 

이태원 국일사

커스터마이징 손자수샵, 국일사를 찾아갔다. 재봉틀과 실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2인조 자수 장인의 공방. 토박이 상인의 '47년' 이태원 이야기를 담아왔다.

왼쪽 이종희 님, 오른쪽 이병수 님. 부부가 47년 동안 이태원에서 자수 가게를 운영중이다. ⓒfrice


서로를 소개해주시겠어요? 

이종희 이병수는 국일사 사장님인데요. 이름 자수 전문가입니다. 손글씨를 잘 쓰고요. 영문 필기체를 아름답게 새깁니다. 미국대통령이 한국에 오면 맞춤양복을 만든다는 거. 혹시 알고 계세요? 이웃가게인 썬양복점이 미국대통령 양복맞춤을 자주 했는데요. 양복에 이름 새기는 건 꼭 국일사로 오더가 와요. 레이건부터 바이든까지 이병수가 새겼습니다.

이병수 이종희는 아내이자 동료입니다. 사람들이 들고 오는 그래픽 자수 시안을 직접 새깁니다. 이병수가 그래픽 시안의 테두리를 그려서 본을 뜨면, 이종희가 그림을 쓱 보고 옷 위에 그림을 척 새겨요. 한 번 쓱 본 그림을 손자수로 만드는 건 제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이종희 밖에 못해요.








#01. "흑백사진으로 본 7080 이태원 전성기"

이병수 옛날 얘기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진을 꺼내봤어요. 한 번 볼래요? 당시 테일러 샵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런 모습 기억하는 사람은 진짜 이태원 토박이죠.




현재의 우리는 모르는 옛날의 이태원. ⓒfrice




두 분은 언제 이곳에 터잡으셨나요?

이병수 우리 둘 다 1974년. 나이는 각자 20대 초중반 일 때네요. 저는 동두천에서 군부대 앞 자수가게에서 배웠어요. '국일사'라는 이름은 제가 일 배웠던 가게명을 딴 겁니다. 내 옆에 계신 분은 용산역 근처 미싱자수학원에서 미싱을 배웠지요. 아내는 이태원 오기 전에 다니던 미싱학원에서 수업을 맡았던 자수 선생님이었어요. 실력은 전국기능올림픽에 나갈 정도였고요. 그렇게 전국 각지에서 각자 배워온 걸로 이태원 시장에 자리 잡았던 기술자가 많아요. 그때 미싱 기술자를 고용한 사업체가 10곳 정도 있었지. 지금은 대부분 은퇴하거나 그만뒀지만요.

이종희 우린 이웃 가게 친구였어요. 그러다 어느 날. 옆에 있는 이병수 씨가 날 쫓아다니기 시작했어요(웃음). 우리 남편이 젊었을 땐 훤했거든요. 미소도 맑고 선했어요. 만나다 보니 79년 11월에 결혼했네요.


7080 이태원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이종희 80년대부터는 이태원에서 재봉틀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여러 방면으로 시도했었어요. 킹샵이라고 직원을 서너 명 뽑아다 시장건물에서 손자수 전문샵을 하기도 했는데, 2009년부터 하던 사업 다 접고 국일사만 집중하고 있어요. 우리 둘이서만 일한 지는 이제 20년 조금 넘었어요. 




ⓒfrice




이병수 이건 용산구청에서 녹사평역 넘어가는 로터리인데요. 여기에 콜트 장군 동상이란 게 있었던 시절이에요. 6.25전쟁 때 미군 사령관인데 이태원 랜드마크였죠.


사진 보면 이태원이 서울이 아니라 미국 도시 같아요!

이종희 지금 평택으로 미군 기지를 옮겨서 뜸한데, 당시 이태원은 정말 미국 사람이 많았어요. 주한미군 가족도 많이 머물렀죠. 시장에서도 한국생활잡화보다 미군이나 미군 가족이 살 법한 물건을 많이 팔았지. 진짜 밍크는 아닌데, 밍크털처럼 부들부들한 담요가 그때 많이 팔렸어요. 양복점이나 빅사이즈 옷가게도 그런 영향이란 말이죠.

우리는 주한 미8군 계급장 같은 걸 직접 해줬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정겨웠던 시절이에요. 어느 미군이 양말 가게 단골이면 '헤이~싹쓰맨~'하면서 놀러 와요. 7월 미국 독립기념일에는 이태원 사람들이 용산 미군기지에 초청받아서 가족끼리 파티도 하고 그랬지. 칠면조도 먹고 케이크 떠서 나눠먹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주변의 기물들은 이야기와 함께 과거를 상상하게 한다. ⓒfrice




기억에 남는 당시 단골손님이 있나요? 

이종희 1984년쯤 일인데 이태원 양복점 단골손님이던 장교가 퇴역 앞두고 단골가게 사장님들을 싹 다 모았어요. 덕분에 한국에서 즐거웠다고. 송탄에 같이 가자고. 기념으로 경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그래서 이웃 가게 사람들이랑 미군 비행장 들어가서 아산만 바다 위를 40분쯤 비행했죠. 옛 이태원 시장 단골 손님이 우리에게 전했던 커다란 감사인사 였어요. 


낭만이 있었네요. 영화 <탑건 : 매버릭> 엔딩 같습니다. 

이종희 이태원이 미군이 다녔던 클럽이 있어서 그런지 거친 이방인이 많을 거란 오해가 있어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죠. 오히려 이태원에서 만났던 미군은 대부분 겸손했어요. 군인이니까 기본적으로 듬직하지. 성격이 대체로 정직하고 가정적이라고 해야 하나? 특히 가족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젠틀한 사람을 손님으로 많이 만났던 거 같고. 영어도 덕분에 쉽게 배웠던 거 같아요. 복무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한테 우리가 양복 셔츠에 이름자수 많이 해줬어요.

이병수 70년대 이태원은 양복점이 유명했죠. 기술자를 고용해서 의류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동대문이 도매시장이라면, 이태원은 까탈스러운 오더를 맞춰주는 소매시장이었어요. 특히 연예인 무대의상을 잘 만들었죠.

우리가 지금은 핸드메이드 자수 작업을 하지만, 양복점에서 맡긴 옷에 부속품이나 특별 오더 디테일을 달아주는 작업도 많이 했어요. 창고나 서랍장 열면 테일러샵에서 쓰던 금장 단추나 옛날 실같은 게 아직도 있어요. 여기 보세요.




가림막 뒤에 잠들어있던 부자재 진열장. 함에 들어있는 부속품이 반짝거린다.ⓒfrice



세상에! 이건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셔야 하는 유물인데요!

이병수 이거 다 가져가셔도 될 거 같아요.(웃음)

이종희 의류는 집단 제작이에요. 양복을 테일러샵 한곳이 다 만드는 게 아니거든요. 단추나 실같은 부속품을 팔거나 자수 집처럼 보조 작업을 해주는 가게가 나란히 움직여요. 그러다 보니 자수하는 사람은 별일을 다 맡아요. 우리는 매번 다른 자수를 놔야 하잖아요. 해봤던 자수는 더 잘해야 하고, 못 해본 작업은 하면서 느는 거죠.




ⓒfrice




이병수 우리 월급이 1970년대 당시 45,000원입니다. 당시 말단 공무원 월급이 25,000원이고 하숙비나 월세가 5,000~6,000원 했을 거예요. 재능 있고 기술이 있으면 일한 만큼 보상은 받는 거죠. 지금은 의류사업이 크게 줄긴 했는데, 우린 미싱 기술이 있으니까 시대에 맞춰서 할 일을 해요. 








#02.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시작하다."


ⓒfrice




한때 이태원 패션이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시장에는 지금도 미국 워싱턴 상원 의원이 양복을 주문하는 테일러샵이 있더군요.

이병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예계에서 들어오는 창작 의류 제작도 이태원이 잘했어요. 그러다 강남 개발 끝나고 패션으로 청담이 뜨면서 완전 흐름이 넘어갔어요. 우리도 변해야 했지. 어쨌거나 유행이 변하고 상권이 변해도 자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이종희 대단했죠. 88 서울 올림픽 개최준비 때부터 한 풀 꺾였어요. 상표 도용 단속이 있었는데, 이후로 조금씩 상권 활기가 떨어졌지요.

지금은 디자인이나 저작권을 귀하게 다루는 게 상식이지만, 80년대 만해도 그런 인식이 희미했어요. 셔츠에 나이키 스우시 로고 그려달라면 그려주고, 체육복에 줄 세 개 그어서 아디다스처럼 만드는 게 대수롭지 않았던 거였죠. 올림픽 맞이하면서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니까. 도시미관이나 미풍양속 점검한다는 이유로 짝퉁 의류 생산 단속이 심해졌어요. 문 닫아야 하는 가게도 많았어요.




가게 벽면 가득히 각종 네임태그, 자수 패치들이 빼곡하다 ⓒfrice




이종희 그래서인지 90년대에는 비보이팀이나 풋볼팀에서 단체 유니폼 손자수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당장 어제만 해도 오랜 단골 손님이 구멍 난 데님 재킷을 가지고 왔죠. 거기에 꽃자수를 넣어달라네요.

이제 우리는 상표 걱정 없는 자수를 하는 거죠. 손님들의 사적인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맡는 게 즐거워요. 국일사는 그래서 개인이나 팀을 위한 자수 작업을 전문으로 합니다.


어쩐지 가게 안에 가방이나 여행용 캐리어에 매는 네임태그가 많습니다.

이종희 항공사 직원이 국일사를 많이 찾아와요. 항공사 직원들은 동료랑 똑같은 액세서리 맞추는 게 문화인가 봐요.

이병수 얼마 전 '뽀빠이'라는 일본 잡지에서 취재하러 왔는데 국일사가 서울여행 추천장소로 소개됐어요. 서울 놀러왔다가 기념품으로 러기지 네임태그 하나 만들어 가는 곳으로요. 요즘엔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어요.




ⓒfrice




이병수 종종 어학당 같은 곳에서 외국인 유학생들 네이밍 자수해달라고 가방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요. 그 친구들은 말 배우러 온 거니까 사교적인 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농구나 축구하면서 친해지고. 여행도 많이 다닐 테고. 뒤죽박죽 어울리다 자기 물건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거지. 거기에다 한글도 열심히 배우고 있잖아요. 자기가 원하는 글씨체로 메시지를 새기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야. 한국에서 뭔가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나나 봐.(웃음)

이종희 한국에서는 물건 잃어버려도 비교적 잘 찾을 수 있잖아요. 외국에선 잃어버린 물건을 도로 찾기 힘들대요. 그래서 네임태그 아이템이 꼭 필요한 거죠. 문화 차이 때문에 생긴 수요라 재밌는 오더예요.


손자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뭘까요? 

이종희 일단 그라데이션. 컴퓨터 자수는 깔끔하죠. 그래픽도 정교하고. 그런데 그라데이션 구현은 컴퓨터로는 어려워요. 실 위에 실을 덧대는 자수가 아닌 거죠. 예시로 제가 예전에 작업한 스카잔 재킷을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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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얼굴을 큼지막하게 등판에 새긴 건데요. 색을 유심히 보면 실 사이에 그림자 같은 게 져요. 컴퓨터로는 이런 음영을 낼 수 없어요. 엇비슷한 색으로 실을 바꿔 넣으면 입체감을 살릴 수 있거든요. ”검은 실을 수놓은 부분에 살짝 연한 파랑을 끼워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하는 거죠.

이병수 기술만 있으면 컴퓨터보다 빠르게 작업하는 경우도 있어요. 로고면 로고, 욕이면 욕.(웃음)  주문자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표현할 수 있고요. 뭐든 다 되니까 예뻐요. 가끔은 "맙소사... 굳이 이런 걸 꼭 새겨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요. 가게에 걸린 샘플 자수 패치는 컴퓨터 자수가 대부분이지만, 원한다면 손님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서 따로 재현할 수 있어요.




ⓒfrice




이종희 다들 사연을 갖고 만들어 달라는 거니까. 예술작품이라 여기고 열심히 해요. 가끔 만드는 나도 깜짝 놀랄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다 만들고 나서 주인한테 연락하지만, 너무 잘 만든 작품은 가끔 되돌려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작업 마치면 조금씩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우리 가게에서 자수 작업하신 분들 따로 연락주시면 많이 반가울 거 같아.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쓰이고 있을지 궁금해요. 막내사위가 운영하는 국일사 인스타그램에 올려드릴 테니까 많이 연락 주세요. 


자수 작업을 맡기는 비용이 궁금합니다.

이병수 러기지 태그에 들어가는 네이밍 자수는 보통 6,000원에서 12,000원까지. 의류에 새기는 그래픽 자수는 10,000원 부터 시작해요. 스카잔 재킷처럼 등판에 넓은 면적을 한 땀 한 땀 복잡하게 따는 작업은 직접 보고 견적을 내드리고 있습니다.




ⓒfrice




이종희 우리는 작업하느라 바빠서 SNS할 여력은 없어요. 대신 막내사위가 작품 기록과 대외소통을 맡고 있죠. 우리더러 "장모님 장인어른 가격 좀 더 올려 받으셔라!"라고 하는데...(웃음)

우리는 일단 열린 마음으로 손님이 맡긴 시안을 봐드려요. 가게가 좁기도 하고 사람이 몰리면 난감할 수도 있는데. 직접 와서 언제든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우리가 가게에 있을 때, 시간만 나면 다 직접 안내해드려요.








#03. "내가 자수 디자인을 사랑하는 이유"


ⓒfrice




40년 넘게 하셨는데 혹시 일이 질리진 않으세요? 

이종희 전혀! 실밥 잘 끊고 싶어서 손톱도 늘 예리하게 깎아요.(웃음)

일을 질리지 않게 만드는 의뢰가 종종 있어요. 예전에 제가 정조대왕 화성능행도를 본떠서 옷에 자수를 새겼었어요. 해마다 패션디자인과 사람이나 의류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수가 많이 드는 시안을 들고 와요. 기억에 남는 졸업작품 중 하나였죠.




ⓒ국일사


조선 풍속화 보면 그림 속에 사람이 엄청 많잖아요. 인물 하나하나를 의류에 새겨서 그래픽 디테일로 새기는 작업이니까. 돈도 한두 푼 드는 게 아니거든요.

그때 나한테 졸업작품 맡긴 학생한테 당부했어요. 이런 자수는 완전히 똑같이 재현하는 게 아니라고. 너무 기대하면 곤란하다고. 나도 감각을 발휘해서 툭툭 건드리는 거라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100%에 도달하는 거군요.

이종희 맞아요. 손끝 감각에 집중하면 100%를 넘기도 해요. 중요한 건 우리가 신나는 거죠. 실은 뭘 쓸지. 색의 음영은 어디서 강조할지. 신나서 생각하다 보면 완성도가 100%에 가까워져요. 




ⓒfrice




컴퓨터 자수 완성도를 100%라 치면, 손자수는 처음부터 100%를 할 수 없어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실밥을 뜯어서 다시 새긴다거나. 미리 연습하면서 감을 잡아본다거나 하면서 100%에 닿으려는 거죠.

90%에 그칠 걸 98~99%까지 만들면, 거기서만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단박에 100%를 훌쩍 넘는 결과가 나오면 그 나름대로 예쁘고요. 같은 시안을 새겨도 아주 미세하게 달라요. 그게 사람이 다루는 재봉틀 자수의 매력이고 국일사 자수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국일사 전성기는 언제입니까?

이병수 벌이는 옛날이 더 나을 순 있는데, 지금도 좋아요. 50년 묵은 기계와 이제 한 몸이 된 느낌이에요. 우리는 각자 작업하는 자리는 서로 바꿔 앉지도 않아요. 20년 동안 길들인 작업환경 안에서 우리는 기술자로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평면 안에 실을 새겨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건 이제 자유자재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걸 느껴요. 이태원 옆 보광동에 폴리텍대학이 있잖아요. 기술 가르치는 학교에 사람이 제법 늘었더라고요. 우리가 수십 년 했던 손자수의 가치도 높아지는 거죠.




ⓒfrice




이종희 우리가 디자인한 결과를 손님이 마주했을 때, 그분들이 리액션을 한단 말이죠. 기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맡긴 자수가 자기한테 어떤 의미인지. 우리한테 신나서 말해줘요. 사람이 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짜릿하잖아요. 소통하는 재미도 있고요. 아날로그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손님은 원하는 걸 내게 가져오고. 나는 디자인을 완성하고. 손님은 행복하고. 그뿐이죠.


기술 전수를 진지하게 고민하실 거 같아요.

이병수 저희가 이 일 배울 때만 해도 자수 기술자가 천대받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젠 기술 가진 보람이 있고 자부심도 있어요. 자식들도 다 손자수 하나로 키웠고요. 올해 자수 배우고 싶다는 젊은 사람이 국일사를 찾아왔어요. 반갑긴 한데 일단 셋이 쓰긴 좁은 곳이잖아요. 그리고 우리 머신을 내 줄 순 없어서 일단 돌려보냈어요. 배우겠다는 사람도 재봉틀을 구해야하고, 우리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이종희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우리한테 용기를 줘요. 우리는 그냥 만날 하는 일인데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해보라고 하거나 지역축제에 초대해서 재봉틀로 공개 자수 작업을 해달라고 불러요. 속는 셈 치고 따라가면, 대부분 우리를 존중하고 즐거워하거든요. 여태까지 너무 이태원에서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냈나 싶네.(웃음) 

이제 다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요. 그래서 우리 손자수 기술이 지금 세상에 더 어울리는 기술이 아닐까 싶어요.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환영해요. 잘 가르치고 싶어요.








😈 이 날, 이미지로만 보여드린 프라이스 로고를 보시고 이종희님은 즉석에서 펜으로 슥슥 밑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아주셨어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옮기는 일은 많은 집중력과 관찰력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보고 그린 러프 스케치 위에 자수를 직접 놓는 장면은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는데 정말 정교하고 빠르시더라고요! 

국일사의 사장님들은 본인들을 기술자라고 하셨지만, 일평생 재봉틀과 한몸이 되어 작업을 해오신 모습이 장인의 경지라고 느껴졌어요. 요즘은 일도, 머무는 곳도 자주 옮기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는데요.

여러분은 일평생 하나의 직업을 가져야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그 일을 수십년 동안 같은 동네에서 하게 된다면 어떤 감정이 들 것 같나요?





정리 프라이스
사진 한희석
장소 이태원 국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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